본보 태백정선인터넷뉴스는 2021년부터 창간기념특집으로 ‘석탄광부의 희망 꿈을 찾아서’와 ‘석탄산업전사를 위한 성역화사업 및 산업전사위령제 국가행사화, 석탄광부를 위한 제도적 지원안, 광부상건립 등 포괄적인 내용으로 접근했으며 최근에는 ’석탄산업전사 추모 및 성역화추진위원회(위원장 황상덕)‘ 출범 및 포럼개최, 광부사진 및 관련전시회 등을 계기로 구체화되고 있다. 따라서 2025년 주제를 구체적으로 접근해 관련 단체 및 단체장의 인터뷰 문화 및 관광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보도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를 세부화하여 2025년 대주제를 ‘석탄광부의 날을 제정하자’로 했다. 이번 회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제정 후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북한의 광부들을 위한 기념일 제정 등을 싣는다. | | ▲ 지난해 7월 성역화 사업 추진 실행 방안 구축을 위한 포럼에서 전직광부 진폐재해자들이 피켓을 들고 광부의 날 제정을 외치고 있다.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을 중심으로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 1979년 12·12사건을 통해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계엄령을 통해 당시의 군부통치체제를 연장하려 했다. 1980년 봄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신군부 세력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됐다. 이에 신군부는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시위 및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했다. 이후 1980년 5월18일 광주시 전남대학교 앞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이 충돌했다. 계엄군은 시위대와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됐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후 1987년 일어난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 | ▲ 지난해 11월 서울 석촌호수에서 열린 성역화추진위원회 주관 광부사진전시회 |
1992년 김영삼 대통령 당선과 함께 문민정부 출범 이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압에 관한 법적 논란이 제기되었으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재평가가 시작됐다. 1996년 광주시의회가 5월18일을 ‘5·18 민중항쟁 기념일’로 지정하는 광주시 조례를 제정했다. 1997년 2월 광주시는 ‘5·18 민중항쟁 기념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해 줄 것을 건의했으며 같은 해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제정됐다. 국가차원의 기념일 제정에 앞서 광주시가 앞장서 조례 제정과 함께 기념일로 지내오고 있었으며 이후에 국가적 재평가를 통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보다 먼저 세정한 북한의 석탄산업전사의 날 지정 아래 자료들을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 소장이 각종 기록들을 찾고 논문 발표를 통해 드러난 것들로 석탄산업이 우리 보다 일찍 시작한 북쪽에서 석탄광부들을 위한 기념일을 제정하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10년대의 평양광업소와 1220년대의 아오지탄광 등 남한보다 석탄산업을 먼저 시작한 북한에서는 해방 이후 광부절까지 만들어서 광부들을 위한 예우에 나서고 있다. 또 광부절(鑛夫節)에 이어 석탄광부만을 위한 탄부절(炭夫節)까지 제정하고 나섰다. 1955년 제정한 광부절이 있는데도, 1990년 10월 31일에는 탄부절을 제정한 것이다. 땅 속의 지하자원을 캐내는 포괄적 개념의 광부절에 포함하여 석탄광부를 기념하다가, 석탄광부를 별도로 분리하여 예우할 만큼 석탄산업이 지닌 가치가 큰 것이다. 1991년부터 탄부절은 7월7일, 광부절은 9월15일(세번째 일요일)에 맞춰 기념했다.(통일부 자료) 그런데 1993년 들어서는 탄부절은 7월7일 그대로 두고, 광부절을 7월1일로 옮겼다. 북한의 선전매체에서는 광부절을 7월1일로 옮긴 것은 “1975년 7월 1일 김정일이 ‘검덕광업연합기업소’를 방문한 날”의 기원을 찾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97년에 한 차례 더 바뀌는데 탄부절을 4월24일로 변경하고 광부절은 7월1일 그대로 시행하여 2021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정연수 소장의 논문을 2021년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편 통일부가 제작한 《북한 주요 행사 예정표》는 광부절이 1957년 7월 5일에 제정되었다고 기록하는데, 이는 오기로 보인다. 북한은 1955년에 이미 첫 탄부절을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동신문 1955년 8월 31일 자에서 「첫 탄부절을 로력적 성과로 맞이, 사리원 탄광에서」라는 기사를 보냈고, 같은 신문 9월1일 자에서 「작가 예술인들 탄부절을 기념하는 작품 창작에 정진」 등의 기사를 다룬 바 있다. 그해 같은 신문 9월18일 자 1면에는 김일성의 축하문 「공화국 탄부절에 제하여 석탄 공업 부문의 전체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에게!」도 실렸다. 북한의 광부절 기원은 탄부절이었던 것이다. 러시아(당시 소련)가 탄부절을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었는데, 북한이 러시아의 탄부절 경축 인사를 보낸 것으로 보아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선 1955년부터 탄부절로 지내다가 이를 광부절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다시 1990년에 탄부절을 제정한 것이다. 태백의 산업전사위령제는 1975년 산업전사위령탑 제막과 함께 시작하여 태백광공제 기간(당시 삼척군 황지읍, 장성읍)에 열렸다. 광공제가 폐지된 이후에는 태백제 기간에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지금은 별도로 거행하며 위령탑 관리기구인 산업전사유가족협의회 주관으로 진행된다. 탄광이 활성화할 때 지역의 문화제 첫 순서는 늘 순직 광부를 기리는 위령제였다. 태백의 광공제, 정선의 사북석탄문화제, 영월의 강원도탄광촌 문화제 모두 위령제를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그러나 아직 산업전사의 희생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는 없는 실정이다. 유가족과 탄광촌 주민들은 탄광의 산업전사를 기리는 기념일이 제정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계속> |